[3.1절] 알아보기
• 시행일: 1949년 10월 1일
• 분류: 국경일, 공휴일
● 3•1절
1919년 3월 1일 일어난 3•1 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지정된 국경일로 국권 회복을 위해 민족이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누리길 바랬던 선열들의 의업을 기르고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1949년 <국경일에 관한 법률>에 의해 국경일로 지정되었어요.
이날 정부 및 지방단체 주관으로 기념식과 다양한 기념행사가 펼쳐져요.
● 3•1 운동
1919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항거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난 민족해방운동으로 기미독립운동이라고 해요.
1919년 3월 1일 서울의 태화관에서 민족 대표들의 독립 선언을 시작으로 학생들과 시민들이 탑골 공원에 모여 독립 만세를 했어요.
이 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일제의 무단통치를 종결시켰고, 나아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. 중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민족 해방운동에도 영향을 미쳤어요.
● 3•1 운동의 의미
일제의 무단통치가 끝나게 되어 민족해방운동이 조직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으며, 운동 해방운동이 운동 이념상에서 폭력주의가 청산되었고 민주공화제 이념이 전면적으로 보급되었어요. 그 결과 공화제 형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수립될 수 있었어요.
또한, 이 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에서 이긴 대규모 반제국주의 민주운동이었으며 한민족의 독립 의지를 대내외에 널리 알렸을 뿐만 아니라, 중국 등 아시아 민족의 해방운동에 영향을 미쳤어요.
그러나 이 운동은 일차적으로는 일제의 잔인한 탄압으로 인하여 독립 쟁취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전국적으로 운동을 지도할 조직이 없었고, 이 운동을 처음 준비했던 33인이 일본•미국 등 제국주의의 국가가 독립을 선사해 줄 것으로 기대해 타협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민중의 투쟁을 끝까지 이끌어 거지 못했던 점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된 내적 원인이었어요.
운동 과정에서 드러난 이러한 한계는 이후 민족해방운동에 귀중한 교훈을 남겼어요.
3월 1일 하면 예전에는 유관순의 얼굴이 떠오르고, 투쟁했을 선열들의 치열함을 생각했어요. 그리고 꼭 태극기를 달아 기념하자였는데 커 갈수록 그 의미가 살아지고 공휴일뿐 쉬는 날로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.
요즘 세계적으로 전쟁, 가난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잖아요. 그런 일들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지 100년이 안 지났어요. 남에 이야기가 아니죠.
인간의 탐욕은 어디가 끝일지.. 피해 보는 사람은 늘 약자죠. 내 거라는 의식 때문 같아요. 만물은 하나님이 지으셨는데 말이죠.
모두가 행복한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. 조금씩 욕심을 내려놓고 주변을 살피고 이끌어 주는 그런 모습 그냥 그랬으면 좋겠어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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